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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석’ 인천문화재단 대표 곧 임명될 듯
지난 1월 말 인천문화재단 노동조합이 재단 신임 대표이사 선출과 관련해 심사 과정 등에 대한 투명한 공개와 박남춘 인천시장의 입장 표명 등을 요구하며 기자회견하고 있다. ⓒ배영수지난해 11월부터 공석인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자리가 조만간 채워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직무발표회에 참여한 5인의 후보 중최병국 전 인천아트플랫폼 관장이 유력한 가운데 다음주 중 인천시와 인천문화재단을 중심으로 혁신위원회 구성 등 절차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15일 인천시와 인천문화재단, 재단 노동조합 관계자 등에따르면 현재시와 재단은 혁신위원회를 구성해 혁신안을 마련키로 했다. 재단 이사회와 지난해 출범한 재단노조, 지역 내 문화예술단체 인사 등으로 혁신위를 구성한 뒤 신임 대표이사와 함께 혁신안을 만들어 가겠다는 것이다.현재 혁신위 구성이 거의 끝나가는 가운데 시와 재단 등은 빠르면 다음 주 경 혁신위 구성을 마치고 대표이사도 선임할 예정이다.아직 구체적인 시기와 날짜 등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확정하지 못했다.이같은 혁신위의 구성은 지난 1일 재단 이사장이기도 한 박남춘 인천시장이 자신의 SNS에 “문화관광체육국장에게 문화재단을 새롭게 변화시킬 방안을 만들어 신임 대표이사의 확약을 받아오라고 했다”고 밝혔던 것이 배경에 있다.재단 혁신위는 이사회와 노조, 문화예술계가 참여하는 문화 분야 협치기구로 만들어지며 3~6개월 여간 활동하며, 신임 대표이사가 혁신위 및 혁신안을 토대로 재단 혁신작업을 먼저 실천키로 했다.특히 박 시장이 재단 혁신과 관련해 △창의성과 다양성의 보장 △문화행정의 관료화 경계 △비대해진 조직의 슬림화 △무엇보다 정치권력에 좌지우지 되지 않는 인사 독립성 확보 등을 직접 밝힌 만큼 혁신위의 주요 작업에도 큰 영향이 예상된다.예를 들면 대표이사 등 문화재단 임원 선출 과정 등 인사혁신 및 조직개편 등 대한 개선안을 비롯해 시 산하기관으로서 예산을 내려받는 처지의 현 재단이 정치권으로부터의 독립성을 어떻게 보장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방안 등은 물론 문화사업의 신규 정책방향 등도 향후 혁신위의 주요 과제로 거론된다.다만, 재단 노조의 경우 이러한 혁신안에 대해 우려의 시각도 있다. 혁신위 구성 단계에서 시의 자세가 계속 달라져 왔다는 게 노조 측 입장이다.또 신임 대표이사 내정자가 사실상 혁신안을 주도하게 되는 셈인데, 이전부터 신임 내정자에 대한 우려의 시각이 있어 왔다는 것도 한 몫 하고 있다. 아울러 정무직으로 입사한 문화재단 고위직 인사들이계파를 형성하면서 조직 내부의 위화감마저 감도는 현 상황을 신임 대표가 과감히 수습할 강단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재단 노조 관계자는 “우리가 지난달 말경 기자회견을 하고 이후 문화인천네트워크 측도 기자회견을 한 직후, 시장 특별보좌관 측에서 노조를 한 번 찾아온 적이 있었다”며 “당시에는 재단 노조와 문화인천네트워크 등이 주도해서 인천의 여러 문화단체들이 참여하는 구성을 인천시가 만들어주고 시는 크게 개입하지 않기로 했었다”고 말했다.이 관계자는 “우려하는 것은 그때와 달리 현재 혁신위 구성을 시가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물론 노조나 문화인천네트워크가 주도하자면 그 권한이 합당한가에 대한 의문 등이 있어 사실상 부담이 크긴 하지만, 시가 주도하는 모습 역시 우려스럽기는 마찬가지”라고 의견을 말했다.한편 노조 측은 “혁신위와 관련해서는 시가 재단 노조는 물론 재단 고위직에도 연락을 했던 걸로 확인됐다”며 “내부 정황 상 고위직에서는 이번 혁신위에 참여하는 인사는 없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 역시 아직 확정된 바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인천 3.1운동 역사 연구 제자리... '전진'해야 한다
삼일운동 백주년 연속포럼을 진행하고 있는 생명평화포럼이 150차를 맞아 ‘삼일혁명과 종교’(천도교와 기독교를 중심으로)를 주제로 14일 오후 7시 부평아트센터에서 포럼을 열렸다.이날 포럼에는 이우원 천도교 선도사가 ‘3.1 혁명과 종교의 열할(천도교)’를 주제로 발제하고 이한수 인성여고 교사가 지정토론자로 참여했다. 이어 ‘인천지역 기독교인의 항일운동 – 인천의 3.1독립만세운동과 감리교회’를 주제로 박철호 기념탑교회 목사(인천사연구소 전임연구원)가 발제하고 김상태 인천사연구소 소장이 지정토론했다.이우원 선도사는 이 자리서 1910년 8월 경술국치를 당해 천도교 손병희 선생(3대 교주)이 “전 천도교 도인들은 첫째도 독립, 둘째도 독립, 셋째도 독립”을 주창하며 10년 안에 독립을 이루리라 천명했다”며 “1912년 4월 전국의 대두목 21명을 선발, 49일간 수련한 제1회 연성수련에서 이신환성(以身幻性; 신체를 영성으로 바꾸라)을 강조하며 독립을 위해 죽음도 불사할 것을 결의했다”고 강조했다.천도교는 ‘성미제도’를 통해 전국 민초들이 모아준 성금으로 탄탄한 재정을 확보했다. 1914년 7회 연성수련에서는 7회에 걸쳐 수련지도한 지방두목 483명에게 태극기 목판본과 소형 인쇄기를 선물함으로 후일 3.1운동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인쇄 배포하고 국권회복운동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고 이 선도사는 설명했다.1919년 2월 독립운동에 착수한 천도교는 모든 당파를 초월하여 거족적으로 참여하도록 권유했으며 23일에는 독립운동을 위해 이승훈 장로를 통해 기독교에 5천원(현재1억5천만원)을 전달하기도 했다. 불교에도 3천원이 전달됐다.이 선도사는 “동학 천도교에는 순교자가 한명도 없다. 순국자만 있을 뿐이다”라며 “그렇다고 국수적인 민족주의자들이 아니라 전 인류 모두가 신과 같은 소중한 존재로 대우주, 대정신, 대생명의 한뿌리임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그는 100년 전 3.1 혁명에서 종교계가 하나로 뭉쳐 독립선언을 하였듯이 100년이 지난 지금 세계평화를 위해 또 한번 종교계가 지혜를 모을 수 있기를 기원했다.이한수 교사는 지정토론에서 “3.1운동 이전에 만주 길림성에서의 2.1 무오독립선언과 동경 2.8 독립선언이 있었다”며 최초의 독립선언인 무오독립선언에는 신채호 조소앙 이시영 안창호 김좌진 박은식 등 만주·러시아지역 항일독립운동가가 39명이 참여했음을 상기시키며 “경술국치 이후 이미 많은 지사들이 만주와 중국, 연해주 등에 무장투쟁 등 독립의 거점 확보를 위해 힘써왔다”고 강조했다.이어 2.8 독립선언문을 국내 반입한 인물이 젊은 여성 김마리아인데, 그가 일제에 체포돼 3년형을 받고 1921년 병원에서 상해 임시정부로 극적인 탈출에 성공할 때, 인천에서 배편으로 도움을 준 윤응념에 대해서도 지역에서 깊이 연구돼야한다고 말했다. 임시정부 특파원이었던 윤응념은 서해 앞바다 섬에서 활동하며 독립자금을 모아 임시정부로 전달해온 인물로 알려져 있다.이한수 교사는 이어 인천의 독립만세 시위는 천도교 중심으로 조직됐다고 설명했다. 계양구 장기동 황어장터 만세 시위는 천도교도 심혁성이 주도하다 체포됐다. 인천시내 우각로 상가철시 운동은 15세의 청소년 임갑득이 주도한 사실도 상기시켰다.박철호 목사는 2번째 발제에서 “3월6일 인천공립보통학교 학생들과 인천공립상업보통학교 학생들의 동맹휴교와 만세시위로 인천의 3.1 독립만세 운동이 시작됐고 4월8일을 기하여 수그러들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어 1919년 강화에서의 주요 시위와 부천지역에서 발생한 시위를 제외하면 인천 시내에서의 시위는 저조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강화의 시위가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이뤄졌고 부천의 시위도 천도교와 전주이씨, 기독교인들에 의해 촉발되거나 확대되었다고 볼 때, 인천시내에서 시위는 학생들을 제외하고 어떤 촉발세력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그는 그 원인으로 인천지역 감리교회가 움직이지 않은 점을 들었다. 당시 인천지방 감리사였던 오기선 목사는 자신이 관헌의 감시를 받고있고 천도교와도 협력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3.1운동 선언서에 서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기선 목사의 서명불참은 인천을 대표한 민족대표자가 될 수 있었던 기회를 포기한 것이며, 인천지방 감리교회가 조직적으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고 박 목사는 설명했다. 그는 또 인천의 항일운동이 저조한 배경으로 인천항 개항으로 일본인들이 절대 다수가 거주하고 치안상태도 어느 도시보다 완벽했다는 사실도 들었다.그러나 박 목사는 1885년에 전래되어 34년밖에 안된 선교역사를 가진 기독교가 전체인구의 1.3%에 불과한 교세를 갖고 거국적인 3.1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는 중심축으로 역할을 다했으며 이를 계기로 기독교회가 외래종교로 한민족과 유리된 종교가 아니라 한민족의 역사에 참여하고 함께하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교회는 3.1운동에서 ‘주도(主導)로서보다는 통로로서 공헌했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다고 강조하고, 이점은 인천지방의 3.1만세운동에서 감리교회의 역할을 보면 확연해진다고 덧부쳤다.그는 특별히 인천출신 함세덕의 희곡 ‘기미년 삼월일일’(부제-이 일편을삼가 기미년 혁명운동에 순(殉)한 젊은이들의 영전에)이 『개벽』 1946년에 연재된 내용을 언급하고 작품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함세덕의 사실주의적인 이 작품 속에는 만세운동에 불참했던 목사 등 몇몇 인사의 상황을 그려내고 있는데, 천도교가 5천원을 기독교에 전달한 사실도 담겨있다”며 부평아트센터에서 함세덕의 작품을 공연하는 것도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김상태 소장은 지정토론에서 “발제 자료는 지난 2006년에 발표된 내용인데 그 이후 진전된 것이 별로 없는 것 같다”며 “3.1운동을 비롯하여 한국전쟁 등을 주제로 인천지역의 역사에 대해 꾸준히 심포지엄을 해오고 있고 책도 발간됐지만 지역에서의 주목하지도, 관심도 갖지도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인천시도 마찬가지라며, 인천이란 도시의 역사 의식도 이 정도가 아닐까 라며 문제를 제기했다.이에 인천지역 역사를 연구하며 부족하다고 공감했던 부분이 오랜 기간이 지나도 해명됨 없이 일반적인 내용으로 조심스럽게 결론 짓게 된다며 지역역사 연구에 깊이있는 사실입증이나 고증작업으로 진전이 요구된다는 점을 지적했다.이어 김 소장은 남아있는 기록은 누군가 찾아보고 활용하면 되겠지만, 지금 남아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며 구술의 필요성에 관심을 갖게된다고 말했다. 또 인천의 역사를 위해 과거보다 앞으로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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