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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민’이 지키려는 것, ‘관’은 파괴한다

지역 주민이 악을 쓰고 지키려는 의미, 중구청장은 알고 있나

17-06-01 13:40ㅣ 배영수 기자 (gigg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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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텀 라인’에 걸려있는 그림(사진 위)와 이것을 30년 넘게 보존해준 클럽 측에 감사의 표시를 하고 있는 원작자. 버텀 라인의 주인장인 허정선씨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직접 올린 사진이다.

 

중구 신포동에는 ‘버텀라인’이라는 재즈 클럽이 있다. 1983년부터 자리를 지켜온 곳으로 올해로 오픈한 지 34년이 됐다. 대중음악 평론가 박성건씨가 집필한 [한국 재즈 100년사]에 따르면, 버텀라인은 인천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단일 장소를 지켜온 재즈 클럽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곳이다. 별다른 홍보를 하지 않음에도 이제는 그 역사성을 알고 일부러 공연하러 서울에서 오는 뮤지션들도 있을 정도가 됐다.
 
과거 이곳이 창을 내는 공사를 할 때 건물 외벽에서 흙볏집들을 볼 수 있었다는 주인장 허정선씨의 말처럼, 버텀라인의 건물 자체는 100년이 넘은 일제 강점기 시절의 것을 조금씩 고쳐오며 지켜오고 있다. 건물과 시설 모두 노후했음은 물론이다. 이곳을 입장하려면 가파른 나무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또 최근 이 일대를 기저로 일어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 때문에, ‘버텀라인’을 1994년부터 지키고 있는 허씨는 이 불편함에 임대료의 가파른 상승까지 짊어져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 임대인과의 불리한 계약 때문에 시설을 고치는 비용도 모두 허씨의 몫이 된 건 오래다.
 
과거 기자는 허씨에게 “그렇게 부적절한 상승폭의 임대료를 그냥 버티는 게 맞느냐, 이전 검토도 한 번 해 보라”고 말했던 바도 있다. 그러나 허씨는 기자의 이 말만큼은 강력히 반대했다. “한 자리를 지키면서 그 장소성에 대한 보존을 하는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느냐”는 답이었다. 

최근 그 버텀라인에 고마움을 표시하러 온 분이 있다고 했다. 이곳의 계단을 오르내릴 때 붙어있는 액자 그림(사진)의 원작자인데, 버텀라인의 초창기 시절(허씨가 운영하지 않았을 때) 걸려 있었던 그림이었다고 한다. 허씨가 이곳을 인수한 이후에도 그 그림을 버리지 않고 잘 걸어놓고 있는 것을 보고 애써 찾아와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갔다고 한다. 허씨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 원작자의 처녀작이었다고 한다.
 
비단 허씨와 버텀라인을 사례로 든 것이지만, 중구 신포동 및 동인천 일대에는 이렇게 소소한 옛 것들을 보존하려는 민간 개개인의 움직임이 많다. 일제시대 당시 지어진 이 지역의 수많은 근대 건축물에 약간의 리모델링만 거쳐 카페 혹은 갤러리 등의 문화공간을 조성한 민간의 수많은 사례들은, 이 지역이 한국 근대사에서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주민들부터가 알고 있다는 얘기다.

 


근대건축물로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던 ‘애경사’ 건물을, 중구청은 단 두 시간여 만에 사진의 모습처럼 만들고 말았다. ⓒ민운기

 

그런데 지역주민들도 다 아는 지역의 의미를 정작 관할구청인 중구청의 수장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최근 이 지역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근대 건축물 ‘애경사’의 건물을 두 시간여 만에 거의 모두 헐어버린 것은 단적인 예다. 시민단체들에 따르면 최근까지도 이 건물은 인천시 내부에서 시 유형문화재 가지정을 검토하고 있었다. 2일 철거하겠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문화재청에서 보존 가치를 놓고 “철거를 중단하라”는 공문까지 들고 현장을 찾았다.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문화재청의 현장답사를 사전에 파악한 중구에서 먼저 저지르고 보자는 심산으로 철거를 기습 강행했다”고 밝히고 있다.
 
중구 측에 철거 강행의 이유를 묻자 답이 가관이다. “동화마을 주차장이 시급하다”는 것. 개발의 논리 앞에 지역의 고유한 의미와 분위는 전혀 중요치 않다는 얘기다.
 
한편 최근 몇 년 사이에도 중구는 근대건축물로 문화재에 준하는 건물에 해당하는 중구 신흥동 조일양조장 건물과 신포동 동방극장 건물 등을 철거해 주차장으로 사용하는 등의 행정을 펼쳐 왔다. 중구청장의 의지다. 이들 건물을 철거할 때마다 시민사회단체들, 주민들과 심각한 마찰을 빚어왔지만, 중구는 중구청장의 의지로 이를 모조리 무시해 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중구청장이 이러한 행정을 주도하다 보니, ‘관’이 주도해 지켜야 할 지역의 오롯한 의미는 오히려 오랫동안 이 곳에 사는 주민들이 악을 쓰고 지켜오고 있는 상황이 됐다. 그리고 그런 노력에 중구청장은 정면대립을 자청하고 있다. 중앙정가에서는 “정치인의 가장 좋지 않은 모습이 주민(국민)과 싸우는 것”이라는 말이 있는데, 중구청장은 이를 정말 잘 실현하고 있는 듯하다. 
 
기자는 “동화마을을 없애야 한다”는 일부 시민단체의 주장에는 사실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그렇다고 특별히 이의가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동화마을의 생성 과정에 여러 문제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들의 주장에 동의만을 할 수 없는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런 기자에게도, ‘주차장 확보’라는 사유로 근대건축물을 철거해야 한다는 중구의 공식 입장은 좀처럼 동의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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