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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긴 놈이 이긴다 - 갈등과 웃음, 그 함의(含意)

제45화 - 김기용 / 인천교육연구소·인천가원초교

18-02-07 08:00ㅣ 이기용 (jackkim88@ice.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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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오기 전 살던 대동아파트 상가에는 금메달이라는 이발업소가 있었다. 70대 후반의 노익장께서 돋보기를 쓰고 영업을 하셨는데, 어느 날인가 내 머리를 손질하시다 가위를 떨어뜨리셨다. 가위가 떨어지며 머리카락도 뜯겼는데 따갑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 당황하지도 않으시고 천천히 가위를 주우며 하시는 혼자 말씀이 이랬다.

“질긴 놈이 이긴다고 혔는 디, 이제 가위도 나도 많이 됐나 부네…….”

 

이사를 하고도 몇 번인가 찾았는데, 때마다 문이 닫혀있어 가까운 미장원으로 발길을 돌리곤 했다. 이발의자 앞 거울에는 손주 사진이 걸려 있고, 오래된 난로 위 물주전자는 보글거리며 끓고, 손님이 별로 없어 북적이지 않는 그런 분위기가 좋아서 찾곤 했었는데…….

아무쪼록 어르신 건강이 언제나 금메달이길 빈다.

 

질긴 놈이 이긴다, 라는 말을 내가 진하게 기억하는 것은 지금은 교육청 장학사로 들어가 근무하는 동료 때문이다. 성품이 은근하면서도 단단했던 그 친구는 회의나 대화중에 종종 질긴 놈이 이긴다는 말을 하곤 해서 그때마다 잘 어울리는 말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친구의 말에는 여러 가지가 함의되어 있을 것이다. 학교현장에 보이는 부조리와의 갈등, 직책의 역할에 따르는 부담, 자신의 연단을 위한 고단함 등 주위 여건과 다양하게 연계되어 있었을 것이다. 말대로 그 친구는 지금은 더 질겨졌다. 이기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특유의 은근함과 끈기와 인내로 아이들 곁을 떠나서도 건조한 관료 세계에서 잘 버티며 열심히 산다.

아무쪼록 거기서도 행복하게 웃을 일 많기를 바라는 바, 버티며 산다는 표현이 다소 미안하기도 하다. 아무쪼록 친구의 나날에 많은 웃음이 함께 하기를……

 

나도 선생인지라 아이들과의 만남에서 자주 인내의 한계에 당황하곤 한다. 늘 수업 전에 안정된 심정으로 아이들을 만나려 노력하건만, 그날, 그 시간, 그 경우에 따라 발생하는 수많은 변수들은 나의 안정성을 휘둘러 놓기 일쑤다. 돌아보면 내 정서 상태에 따라 수업 분위기가 좌우된 경우가 많은 데, 한 순간 방심과 실수로 후회에 이른 경우가 많았다. 이런 상황이나 결과는 수업방식이나 사전수업준비와는 별 상관이 없다. 아무리 준비가 잘된 수업이면 뭐하는가? 아이들이 흥미로워하지 않고 교사인 내가 즐겁지 않다면? 그래서 그런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이 아이디어가 번득이고 창의적이면 좋겠지만, 이것이 필수선제조건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 지 꽤 되었다.

 

 

매일 아침 교문에서 아침맞이를 하다보면 다양한 인상의 아이들이 몰려온다. 아침부터 이마를 찌푸리고 구겨진 인상으로 오는 아이, 뭐가 좋은지 입이 귀까지 걸려 싱글벙글 들어오는 아이, 나를 보자마자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거는 아이……

“네모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받을 때는 나도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오늘 우리 음악수업 있어요?”라는 인사에는 대답을 잘 해야 한다.

“응, 있어요.”라고 하면 이어지는 답은 두 가지다.

“와~, 이따 봐요, 쌤!”이거나 “에이, 음악 들었다구요? 젠장…….”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앞의 인사말로 기분 좋게 챙겨진 ‘흐뭇함’은 몇 번의 뒷말로 홀라당 까먹는다. ‘말’이란 게 참 무섭다. 백번 좋다가도 단번에 좌절감이 밀려든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오늘 음악시간이 들었느냐?’는 인사말에는 ‘글쎄, 시간표를 봐야겠는 데……’가 되고 말았다. 그럴 때 이따금 떠오르는 말이 ‘질긴 놈이 이긴다’였다.

 

그래,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누가 이기나보자, 아침부터 말 송곳질 해대는 녀석들, 너희들에게는 더욱 활짝 웃어 주마, 말(言)과 화(怒)가 원체 어려워 내 맘대로 되지는 않지만 어쨌든 나의 것이니까.

그때부터 화장실 드나들 때마다 거울 앞에서 이렇게 저렇게 혼자 웃는 연습을 시작했다. 기분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시대 선생에게 절실한 기본 덕목은 은근과 끈기인 것 같다. 질경이 같은 유연한 질김이 소중해 보인다. 그래서 서로 변화를 위한 노력의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을 가능한 유쾌하게 지낼 수 있는 인내가 절대적이다.

 

다음은 내가 수업하는 음악실 피아노에 붙어 있는 자작곡 가사인 데, 아이들보다 나 혼자 더 자주 부른다. 당연히 노래 부르다 뻘쭘해져 혼자 웃고 말기 일쑤다.

 

내얼굴이 둥그라면 네얼굴도 둥그랗고

내얼굴이 동그라면 네얼굴도 동그래요

둥글둥글 동글동글 둥글둥글 동글동글

둥글동글 둥글동글 둥글동글 둥글동글 유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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