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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불빛 하나

(44) 한라산에서 조난 당했던 젋은 날의 기억 - 은옥주 / 공감심리상담연구소 소장

18-02-06 09:00ㅣ 은옥주 (akira83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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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in>은 지난 2016년 6월부터 '공감미술치료센터' 은옥주 소장과 미술치료의 길을 함께 걷고있는 딸(장현정), 아들(장재영)과 [미술치료사 가족의 세상살이]를 격주 연재합니다. 은옥주 소장은 지난 2000년 남동구 구월동에 ‘미술심리연구소’를 개소하면서 불모지였던 미술치료에 투신, 새 길을 개척해왔습니다. 현재는 송도국제도시에 '공감미술치료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단짝 친구 2명과 같이 제주도 한라산을 등반한 적이 있다. 동네 야산이나 돌아다녔지, 등반에 큰 경험이 없던 터라 아주 가벼운 차림에 정상에서 해먹을 간단한 음식물과 간식거리만 챙겼다. 산 중턱에서 만난 경찰들이 비옷이나 비상식량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우리는 자신만만하게 ‘스킨텍스와 새우깡이 있어요’라고 어거지를 썼고 콧노래를 부르며 올라갔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캠프에서 하룻밤을 자는데 딱딱한 침대에 얇은 점퍼 하나로 버티다가 너무 추워서 밤새 셋이서 부둥켜 안고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새벽에 일어나 간단한 요기를 하고 등반 대원들을 따라 나섰다. “어머나” 밤 사이에 산은 안개가 자욱하고 길도 나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1m 앞이 보이지 않아서 우리는 서로를 “경희야, 경자야”라고 애타게 부르며 그 소리를 따라 내 발 밑만 보며 행군을 했다. 전문 등반대원들이 앞서가고 남겨진 우리는, 조금씩 안개가 걷히며 드러난 한라산의 풍경 앞에 탄성을 질러댔다. 낭떠러지에 핀 이름 모를 꽃들과 곱디 고운 에델바이스.
 
그런데 안개가 걷히는가 했더니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비옷도 우산도 없는 우리는 그냥 비를 맞고 걸을 수 밖에 없었다. 온몸은 비로 젖었고 배낭 안은 물이 고여 묵직해졌다. 비 내리는 한라산 백록담을 바라보던 기쁨도 잠시, 우리는 빨리 내려가야만 한다는 절박함에 걸음을 재촉했다. 강풍이 불고 바윗돌이 끝없이 펼쳐진 언덕에서는 큰 바윗덩어리가 ‘쿠다다당’ 굴러내려 금방이라도 바윗돌에 맞아 굴러떨어질 것만 같은 공포가 밀려왔다. 산은 자기를 만만하게 본 우리를 용서하지 않았다.
 
비가 와서 길이 무너져 내려 아슬아슬 남아 있는 천길 낭떠러지 위의 바위에 바짝 몸을 붙여 건너야 하는데 겁이 많은 나는 너무 무서워서 대성통곡을 했다. 먼저 건너간 친구들도 따라 울어 산이 울리도록 셋이 통곡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부모님께 거짓말 하고 온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고 ‘여대생 3명, 한라산 등반 중 조난’이라는 신문기사가 눈앞을 아른 거렸다.
 
배가 고픈데 배낭에는 생감자 두 알과 생쌀 몇 줌이 남아 있어 퉁퉁 불은 생쌀을 씹으며 이정표를 따라 한라산 중턱을 헤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깜깜한 밤이 되었다. 하늘의 별빛 이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 어두운 갈대밭에서 우리는 끝없이 헤맸다. 갈대는 거의 우리 키만큼 커서 헤치고 앞으로 가도 가도 끝이 없었고 체온을 다 잃어버린 우리는 입다물 힘도 없었다. 조용히 있으면 세 사람의 이빨이 부딪히던 소리가 ‘달그락 딱 딱’하고 났다. 너무 무섭고 두려운 우리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초등학고 시절 부르던 ‘학교 종이 땡땡땡’부터 가요에 뽕짝에 찬송가까지. 아무튼 우리가 아는 모든 노래를 부르며 그 무서움을 이겨내려고 애쓰고 있었다. 온 몸의 감각이 없어지고 다리가 풀려 한 명이 푹 쓰러지면 두 사람이 울면서 끌어 일으켰다.
 
그렇게 밤새 깜깜한 갈대밭을 헤매고 있을 때, 멀리서 아주 멀리서 조그만 불빛 하나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대로 쓰러지면 죽는다’는 생각에 가다가 죽더라도 저 불빛 쪽으로 똑바로 나아가기로 우리는 결정을 했다. 한참을 가다 보니 길 하나가 나왔다. 우리는 환성을 지르며 길을 따라 걸어 시내의 경찰서를 찾아 들어갔다. 밤 당번을 서던 경찰관은 우리를 보더니 기겁을 했다. 허리까지 오는 머리카락이 산발이 된 처녀 귀신 셋이 한밤중에 들어섰으니 놀랄 만도 했으리라. 경찰관은 동네 밥집, 아줌마를 깨워 국밥을 배달시켜주고 동네에 숙소를 마련해주었다. 우리는 그렇게 이틀 쯤 일어나지도 못하고 먹고 자고 먹고 또 자고... 주인집 아주머니가 들어와 숨소리를 확인해 볼 정도로 죽은 듯이 잔 뒤, 삼일 째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어기적 어기적 걸어 나갔다.
 
돌이켜보면 삶에서 그렇게 절박했던 순간은 또 없었을 것이다. 가끔 살며 힘이 들 때 그 때의 경험이 생각났다. 그 때 우리가 그 산을 무사히 내려올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 마지막 상황에서 가도 가도 끝없는 갈대밭을 헤치며 공포감을 이겨내고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멀리서 보이던 작은 불빛 때문이었다. 절망과 좌절, 공포와 두려움, 온갖 감정에 밀려올 때 그 불빛은 우리에게 강력한 희망을 안겨 주었었다. 아직도, 불빛을 발견했던 그 짧은 순간의 전율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인간에게 희망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살아오면서 어떠 희망을 가지고 지금껏 살아왔을까. 인생의 대부분을 살아온, 하지만 아직도 살아갈 날이 많은 나는 이제 어떤 불빛을 바라보며 살아갈까. 돌아보고 조금씩 나아가는 올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사진출처 https://blog.naver.com/dct1028/220816739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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