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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즈, 땅을 밟다

(2) 일본 오키나와와 이시가키

18-05-08 10:29ㅣ 양진채 (hanajay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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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토미섬 섬의 조용한 마을 ⓒ양진채>

 
셋째 날 오키나와에 도착했다. 부두 밖으로 수십 대의 버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별로 버스에 올라 관광지를 관광하는 일정이었다. 오키나와는 일본의 최남단 섬이라고 했고, 일본의 하와이라고도 했다. 세계2차대전 당시 오키나와에서 일본군과 미군이 전면적으로 벌인 싸움으로 오키나와에 주둔해있던 군인과 민간인이 자결했고 그를 기념하기 위한 전쟁기념관과 오키나와에서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는 류큐 왕국, 국제거리 등을 들렀다.
 
인천에도 전쟁기념관이 있지만, 늘 드는 생각은 왜 전쟁을 ‘기념’이라는 이름으로 건물을 세우고 ‘관광’을 하는지에 대한 의문, 솔직히 말하면 불만이 있다. 더 이상 끔찍한 전쟁은 없어야 한다면, 방법이 이 방법이어야 하겠냐는 것이다.
음습하고 축축한 땅굴을 둘러보는 동안 처참한 죽음, 회의 장소 등을 보았다. 강제징용 당했던 우리 국민들도 멀리 이국땅에서 아까운 죽음을 당했다는데 그런 내용은 잘 보이지 않았다. 밖은 환했고, 이국의 꽃들이 피어 있었다.



<해군전몰자위령탑(위), 류큐왕국역사박물관(아래) ⓒ최슬기>


류큐왕국이나 국제거리에 대한 특별한 인상은 아쉽지만 없었다. 류큐왕국은 동남아의 어느나라에 가면 볼 수 있는 부족마을을 좀 더 확장해놓은 인상이었다. 국제거리는 우리의 가로수길과 비슷했다. 무엇보다 점심시간 이후에 집결해 입국수속을 받고 오키나와에 내리니 오후 두 시가 넘어, 마치 초창기 동남아나 중국 패키지 여행할 때, 깃발만 보고 따라가는 식의 여행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찬찬히 무언가를 들러보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3월말에 도쿄와 유자와에 갔던 나는 눈 쌓인 유자와와 벚꽃이 지는 도쿄, 두 도시 사이에서 두 계절을 맞았는데 오키나와에 오니 완연한 여름이었다. 서둘러 관광을 마치고 크루즈로 돌아와 뷔페에서 저녁을 먹고, 다시 기운을 내 작은 공연과 쇼를, 놀이를, 흥겹게 춤을 추는 여행객들을 볼 수 있었다. 나이가 만만치 않아 보이는데 대단한 체력이었다.
 
“내 평생 크루즈 여행 한번 해볼라고 동창끼리 적금을 들었는데, 작년부터 몸이 안 좋아 언제 돈 모아 크루즈 여행하나, 그러다 죽는 거 아닌가 했지. 이렇게 인천에서 크루즈 여행을 하게 될 줄 누가 알았어. 나 같은 노인들도 많으니 부담도 없고.”
“인천이 이렇게 발전한 줄 몰랐네. 의리의리하구만.”
 
기항지 둘째 날은 이시가키였다. 크루즈 접안 시설이 없어, 크루즈에서 텐더보트를 타고 이시가키로 이동해야 했다. 기항지에 내리는 관광객도 있고, 또 자유관광을 하는 수도 있었다. 우리는 패키지식이었다. 오키나와를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나는 이시가키에 대한 기대 역시 크지 않았다. 누군가 이시가키는 마라도와 비슷할 거라고 했다. 최남단 중의 남단, 오키나와현에 속한 섬이었다. 우리 서포터즈는 이시가키에서 한 시간을 보낸 후 다시 배를 타고 다케토미 섬으로 들어갔다. 아주 작은 고요한 섬이었다. 별모양의 모래가 있는 해변, 물소가 끄는 마차를 타보기도 하고, 천천히 고요한 골목을 돌아볼 수도 있었다. 그러다 고양이를 만났고, 돌담의 꽃을 만났고, 검은 나비를 만났다. 잠시 크루즈 내내 발이 바닥에서 1센티쯤 떠서 돌아다녔다면 여긴 꼭꼭 눌러 바닥을 딛을 수 있었다.


<다케토미섬에서만 볼 수 있는 별모양의 모래 ⓒ양진채>

 
다시 텐더보트를 타고 크루즈로 돌아오는데 누군가 말했다.
“우리 집에 다와가네.”
어느새 크루즈는 우리 집이 되어 있었다.
 
3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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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주의 저녁 ⓒ최슬기>

<다케토미섬 마을의 물고기 깃발 ⓒ양진채>

<다케토미 섬마을ⓒ양진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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