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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사랑합니다.

(51) 면회오던 날

18-05-08 22:59ㅣ 장재영 (akira83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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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최고의 꽃단장을 한 우리들은
넓은 운동장 안쪽 커다란 천막 밑에 의자를 쭈욱 깔고 앉아 그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천막 안에는 되도록 많은 의자를 깔다보니 팔꿈치가 옆 사람에게 닿는 등 자리가 비좁고 불편하였으나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 웃고 있는 친구도, 웬일인지 그날따라 우거지죽상을 하고 앉아있는 친구도 보였다.

나는 그저 담담하게 자리를 지키며 앉아 가만히 잡생각에 잠겼다.
‘지난 5주간을 돌아보려니 참 많은 일들이 있었구나.. 드디어 이분들을 만나게 되다니..’
생각을 하면할수록 뭔가 조금씩 긴장이 되었고, 눈 씻고 여러번 들여다봐도
애꿎은 시계 초침은 정말 느리게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한참 진행되던 정적을 깨고 한 친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외치기 시작했다.
“충성! 다녀오겠습니다! 어머니이~~” 그 친구는 우리를 바라보며 짧은 경례를 날린 뒤 천막 앞으로 달려오던 그의 어머니를 와락 끌어안았다. “와아아아아아~~~!!!” 그 순간 장내는 박수와 함성소리가 터져나오며 온통 감동의 도가니로 변하였다.
“이야.. 멋있다, 감동인데!” 우리는 면회장으로 이동하는 전우를 향해 사정없는 박수로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고부터는 잠시 정적이 흐르다가 또다시 한명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경례를 외쳤다. “충성!! 다녀오겠습니다.”
이번엔 두 세명이 동시에 일어나 “충성!” “충성!” “충성!”
그리고는 환한 미소를 띠고 박수를 받으며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그렇게 감동스러운 눈초리로 응원을 아끼지않던 나는 주변에 빈 의자들이 점점 많아지고 비좁던 자리가 매우 넉넉해지자 점점 조급한 마음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아...슬슬 오실 때가 되었는데.. 왜 안오지? 오다가 사고가 나신 것은 아니겠지?’
하지만 가족들이 온다고 미리 약속을 한터라 꼭 올 것이라는 믿음은 가지고 있었기에
‘그래..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곧 오실거야..’ 하며 스스로를 달래었다.
그렇게 한 시간이 훌쩍 지난 이후부터는 다른 이들의 감격적인 재회에 박수를 보낼 여유 따위는 없었다. 조교의 지시에 따라 먼저 자리를 뜬 전우들의 빈 의자들을 치워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들도 나도 무표정한 얼굴로 감동도 감흥도 모두 사라져있을 때 쯤 저 멀리 정문 쪽에서 아주 익숙한 느낌의 하얀 차량이 포착되었다. 그리고 그 차량의 운전자는 정문 앞에 서있던 주차 관리자와 실갱이을 벌이기 시작했다.
“아.. 지금 우리 아들 만나러왔다는데 왜 안 들여보내줘요?”
“저기... 어머니 이쪽은 차량 통제를 제한하고 있어서요.”
“그럼 어떡하라고요. 우리 아들 만나야 되는데.

목소리를 들어보니 딱 우리 어머니라는 확신이 들었던 나는 잠시 서운했던 마음도 순식간에 잊어버리고 차량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천연덕스럽게 말을 건내었다.
“충성! 어떻게 오셨습니까? 이곳은 차량제한구역입니다.”
“아니, 왜들이래요. 우리아들이 지금 기다려요. 이럴 시간에 좀 보내주지!”
“네.. 아들 분은 많이 기다렸습니다... 엄마~~ 나야!! 나 모르겠어?? 헤헤”
“어머나? 재영이니??? 모자를 쓰니까 몰라봤네!”
그제서야 본인 아들인지 알아본 어머니와 나는 창문을 사이에 두고 감격적인 재회를 맞이했다.

때는 벌써 십여년전, 의무경찰로 자원입대를 했던 내가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4주간 훈련을 받고 충주에 있던 경찰학교에서 1주차 훈련을 마친 주말이었다.
그날은 집 떠나와 5주간 못 보았던 가족들과의 첫 재회였으며 내 나름대로는 그간 잘 지냈다고 생각했지만 살이 쪽 빠져 홀쭉해진 볼에 하필 생활실 옆자리 전우에게 눈병까지 옮아 눈이 시뻘개져 있었으니 어머니가 나를 못 알아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알고 보니 그날아침 일찍부터 충주로 운전해서오신 어머니와 누나는 내가 좋아하던 빅맥세트를 사려고 충주 시내 한 바퀴를 돌았다고 한다. 결국 한군데를 찾았지만 맥도날드가 문을 늦게 여는 바람에 한참을 기다리느라 늦어졌다고 한다.
한참 기다렸던 당시의 서운함은 가족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잊은지 오래였다.
그저 맛있는 햄버거와 닭다리를 뜯으며 군대생활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천진난만한 얼굴로 웃어댔다. 누나는 치킨을 너무 맛있게 먹는 나를 보며 세상의 모든 닭다리를 긁어모아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한다.


솔직히, 마음고생이 없진 않았지만 그땐 나도 이제 다 자란 한명의 성인이라는 것을 인정받고 싶었고, 아들이 엄마 품을 떠나서도 잘 지낼지 걱정하실 불안한 마음을 안심시켜드리고 싶었고, 나아가서는 내 스스로도 다른 누군가도 거쳐갔을 수순을 밟으며 당당하게 앞으로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름대로 전우들과 잘 지내는 모습과 훈련생활의 재미난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하며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알게된 것이지만, 그날 면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어머니는 마음이 많이 아프셨단다.
시뻘겋게 충혈된 눈, 홀쭉해진 볼이 눈에 아른거려 눈물이 나려고 하는데도 끝내 울지 않으려고 하셨단다. 마음을 굳게 먹고 버텨내려고 애쓰셨단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려 애쓰면서 서로를 위로하고 안심시키며 힘든 시기들을 버텨내었던 것이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찡해오면서 서로를 위해주던 마음이 떠오르곤 한다.
햇살 밝고 따스한 이맘때가 되면 그 시절 느꼈던 감사함이 생각나 마음이 푸근해진다.
그래, 5월이니까! 그리고 오늘은 더더욱 감사할만한 날인지라 멍석이 깔려있을 때 용기내서 말해보련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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