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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의 성장은 이렇게 찾아온다

제74화 - 이정숙 / 구산초등학교, 인천교육연구소

19-08-09 08:38ㅣ 이정숙 (maltar51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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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물반아이들(7)

 
매시간 울고 다투고 하루가 멀다 하고 민원이 발생하고, 학습활동에 참여는 커녕 딴 짓에, 거짓말에, 미운소리만 해대는 아이들과 씨름하다 보면 매순간이 전쟁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십년도 안 산 아이들과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동민이는 늘 엉뚱한 행동으로 샘물을 당황케 한다. 점심시간에 자기가 급식당번을 한다고 하고선 급식대 정리도 안하고 매번 도서실에 간다. 만화책 보러. 같은 모둠인 아이들은 매번 동민이를 찾으러 도서실을 가는데 이골이 났다. 문제는 교실로 불려온 동민이는 왜 자기가 교실로 불려왔는지 잊어먹고 자리에 앉아 있다가 교실 장난감을 가지고 해맑게 논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다그치면 그제야 ‘아 맞다’ 하며 정리에 동참하려 한다. 하지만 이미 친구들이 다 끝낸 뒤다. 그러면 샘물을 쳐다보며 아무렇지도 않게 묻는다.
 
동민: 다했는데 뭐해요?
샘물: 동민이는 자기가 급식당번이라는 거 알고 있었니?
동민: 예.
샘물: 그런데 왜 뒷정리를 안했어?
동민: 잊어먹고 도서실에 갔어요.
샘물: 책이 읽고 싶었구나. 책 읽는 건 좋은 건데...
아이1: 쟤, 만화책만 봐요.
샘물: 그래 만화책도 좋아. 그런데 만화책만 보는 건 안 되겠지? 그리고 자기 역할을 하기로 했으면 다 하고 가야되겠지?
동민: 예
샘물: 네가 맡은 역할을 다하지 않으면 다른 친구들이 네 몫을 하느라 힘들겠지?
동민: 예
샘물: 동민이 대신 뒷정리 해준 친구들이 고맙지? 그 친구들에게 고맙다고 하는 게 어때?
동민: 예, 친구들아~ 고마워.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예, 예 하면서 기계적으로 냉큼 말하는 동민이다. 아마도 지난 수년간 지적받으며 형성된 습관이리라. 그런 ‘깜빡’과 해맑은 ‘아, 맞다’는 수업시간에도 여지없이 나타난다.
 
샘물: 동민아, 국어시간이야, 수학책 넣고 국어책 꺼내야지.
동민: 네? 뭐요?
샘물: 국어책 꺼내라고.
동민: 왜.. 아 맞다.(여기저기 책상 속을 뒤진다. 이내 일어나서 사물함으로 간다. 가다가 뒤에 앉은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다)
샘물: 동민아!
동민: 왜요?
샘물: 국어책!
동민: 아, 맞다.(사물함을 뒤지다 없나보다. 다시 자기 자리로 온다)
샘물: 없니?
동민: 뭐가요?
샘물: 국어책
동민: 아, 맞다. (책상 속에서 꺼낸다)
 
샘물은 매일 매 시간 반복되는 동민이와의 씨름이 힘에 겹다. 하긴 동민이는 좀 나은 편이다. 매일 연필 대여섯 자루와 지우개, 색연필, 심지어 필통에 구겨진 학습지 등등을 떨어뜨려 주변을 쓰레기통처럼  놓는 민율이와 민결이, 지성이, 서우, 동하도 그 깜빡임은 만만치 않다.
 
샘물네 반은 자기가 원하는 날 이름표를 붙이고 청소를 한다. 방과후 활동이 없거나 시간이 되는 날 자발적으로 하루 참여할 수 있다. 규칙은 하루에 청소인원은 다섯 명을 넘을 수 없으며 일주일에 적어도 한번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웬일인지 동민이가 자발적으로 사흘 동안이나 청소에 참여를 했다. 매번 잊어버리기 대장인 동민이의 기특한 행동이 궁금했다.
 
샘물: 동민이는 이번 주에 왜 세번이나 청소를 해?
동민: 제 마니또한테 사탕 주려고요.
샘물: 어머나, 집에서 가져와서 있는 걸 주는 게 아니라 직접 벌어서 주는 거구나. 정말 값진 사탕이네. 동민이 비밀 친구는 정말 좋겠는 걸.
 
청소 후 샘물은 청소의 대가로 사탕이나 과자 등을 지불한다. 동민이는 자기가 청소를 해서 번 것을 비밀친구에게 준다는 것이다. 도무지 아무 것도 모르고 눈치도 없고 마냥 행복한 세살 같게만 보였는데 어느 틈엔가 양보도 할 줄 알고 사탕을 벌어서 친구에게 몰래 줄줄도 아는 아이가 된 동민이의 성장이 너무나 기뻤다. 샘물은 청소를 하고 번 사탕을 몰래 비밀친구 사물함에 기꺼이 넣어주는 동민이 마음이 기특하기도 하고, 청소 후 다른 친구들은 사탕을 먹는데 동민이 사탕을 먹지 못하는 게 안 되어서 “하나는 비밀친구 줄 꺼, 또 하나는 동민이 예쁜 마음에 주는 상” 하며 두 개를 슬며시 주기도 했다.

샘물의 칭찬이 있던 다음날 청소를 하겠다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한 두명 붙어 있던 청소표에 일찌감치 다섯명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나도 내 비밀친구한테 사탕 줘야지’ 하며. 아기같기만 한 동민이의 아이디어가 다른 친구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쳤다. 많은 국면을 통해 배려하는 법, 친구를 사귀는 법을 배우지만 아이들은 때로 자기만의 방법으로 터득 해 간다.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샘물반에는 무기력하고 어린 친구들이 많은 듯했다. 학년 체육활동이나 놀이 활동을 하다보면 활동에 참여하는 걸 두려워하거나 우는 친구들이 유독 많았다. 유하는 신체활동 시간마다 울고는 했는데 하루는 간단한 줄넘기 활동을 하다가 한번 밖에 못 넘었다고 교실바닥에 엎어져 한시간 동안 꼼짝 않고 있던 적도 있었다. 몇몇의 아이들이 매번 울어 실습 온 교생들이 난처했던 적도 한 두번이 아니었다.

강당에서 반별 달리기라도 하는 날이면 꼴찌를 넘어 활동에 관심이 아예 없기도 했다. 달리는 자기 순서가 되면 걷거나 안하겠다고 하는 아이들이 속출했다. 운동장에서 팔자 달리기나 달팽이게임을 하는 날에는 울거나 규칙을 모르거나 관심을 갖지 않는 친구들로 인해 즐거운 시간이 다 달아나기도 한다. 샘물은 2학년 아이들이 놀이 활동에 관심이 없을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래도 교육과정에 놀이 활동, 신체활동이 많다 보니 석 달이 지나가자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방학을 앞 둔 어느 날, 다른 반에서 피구의 붐이 일었다. 샘물은 반 아이들에게 ‘우리도 피구를 한번 해볼까’ 하고 의견을 물었다.

 
 

샘물: 얘들아, 혹시 피구 할 줄 아니?
아이들: 알아요. /아뇨 몰라요.(반반이다)
샘물: 우리도 운동장에 나가서 한 번 해 볼까?
아이들: 예 그래요. / 아뇨, 하지 말아요. 더워요.
샘물: 그으래? 하지말까? 옆 반 하던데. 재밌어 보이던데.
아이들: 해요, 해요.(긍정이 더 우세해지기 시작한다)
 
아이들 허락을 받은 샘물은 다른 반과 함께 피구를 하기로 했다. 역시 다른 반과 게임이 안될 정도로 완패하고 있었다. 공을 피하지도 던지지도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순식간에 떨어져 나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괜히 시작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마지막에 윤호 혼자 남았다. 또래 친구보다 키도 한 뼘쯤 작은 윤호는 어머니가 러시아인 다문화 친구이다. 그래서인지 평소 의기소침해 있다.

그러면서도 ‘톰과 제리’의 생쥐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면서 교실을 종횡무진하고, 아이들을 괴롭히거나 못된 말을 해서 매일 아이들로부터 민원이 발생한다. 하루는 윤호 어머니가 찾아와 자기는 왜 이렇게 못생겼냐는 둥, 엄마가 외국인이라 불쌍하다고 놀린다는 둥, 죽고 싶다고 말한다는 둥의 상담을 하고 간적도 있다.

그런 윤호가 혼자서 계속 공격을 해 나갔다. 순식간에 상대편 다섯 명이 떨어져 나갔다. 갑자기 심드렁했던 아이들이 윤호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기어이 상대편 열 명을 떨어뜨려 한 명만 남겨 놓았다. 그 상태에서 동등하게 아슬아슬한 게임을 하다 공을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졌지만 아이들은 너무나 흥분의 도가니였고 누구랄 것 없이 윤호에게 몰려들어 행가래를 치고 기쁨을 만끽했다.

윤호는 이제 영웅이 되었다. 그 다음 세트도 졌지만 아이들의 동작과 참여도는 그전의 아이들 모습이 아니었다. 이런 체험은 아이들에게 너무나 즐거운 순간으로 뿌리 깊게 각인이 되었는지 그 후 아이들은 점시시간 마다 운동장에 나가서 얼굴이 빨갛게 되도록 피구를 하다 왔다.

며칠 후 또 다른 반과 피구를 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공을 잡으면 지난번처럼 서로 공을 던지겠다고 싸우지 않았다. 제대로 하지는 못했지만 나름 패스란 것도 했다. 점점 분위기는 고조되었고 아이들은 정말 열심히 뛰어다녔다. 첫술에 배부르랴. 역시 지고 말았다. 게임에 진게 안타까웠는지 윤호는 운동장에 멍하니 혹은 허탈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팔꿈치가 다 까지고 피가 흥건했는데도 아무렇지 않은 듯 상처에 무심했다. 샘물은 놀라 얼른 윤호를 보건실로 보냈다. 두 번째 세트엔 무승부로 비겼다. 무승부라도 너무나 좋아하는 아이들의 소박함이 기뻤다. 자기들도 최선을 다해 임했고 스스로 성장하는 모습이 만족스러웠나보다.
 
아이들: 오늘도 재밌었어요.
샘물: 그래, 오늘 저엉~말 멋졌어.
아이들: 윤호가요.
샘물: 그래, 윤호는 너무나 멋졌어. 특히 팔꿈치가 다 까져도 울지도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쓱 모른 척 하고 게임을 하는 게 정말 멋있었어. 그리고 윤진이는 어쩜 그렇게 공을 잘 피하는지, 한수랑 수민이는 점점 패스도 정말 잘해. 와~ 지한이는 얌전한 줄 알았는데 운동장에서 펄펄 날아다니네. 영하는 울지도 않았어. 자기 앞에 온 공도 잘 잡고. 연이도 얼굴에 팍 맞았는데 꾹 참고 열심히 했지. 와! 모두들 대단해. 자기 머리 세번씩 쓰다듬기.
희아: 민결이도요, 아주 잘 피했어요. 공이 막 피해가요.
지선: 수하도 공을 빨리 잡아서 패스했어요.
 
샘물이 한사람, 한사람 씩 칭찬을 하자 아이들도 한명씩 친구들을 칭찬해 주기 시작했다. 스스로가 너무나 대견했던 것이다. 샘물도 이렇게 반응하는 아이들 모습이 너무나 예뻐 게임에 대한 규칙이나 작전을 알려주었다. 누구에게 왜 패스를 해야 하는지, 어떻게 공을 던져야 하는지, 공을 피하는 방법 등등을 신나게 설명하자 아이들은 조용히 집중하며 빨려들었다. 수업시간에 가끔 볼 수 있었던 눈빛이었다.

그런데 그 눈빛이 그저 수업시간에 그치지 않았다. 스폰지처럼 흡수해서 다음 게임에 여지없이 그대로 실행을 했다. 패스도 하고 공을 망설이지 않고 던지고 상대방을 공격할 줄 알았다. 이렇게나 빨리 반응이 나타난다는 사실에 샘물도 약간 흥분상태가 되었다.

아이들의 관심이 고무되자 동학년 샘들은 아예 날을 잡아 창체시간에 전체 활동시간으로 반 대항 피구시간을 하기로 했다.

첫게임 첫세트는 이겨가다가 안타깝게 게임아웃 시간에 한명 차로 졌다. 두번째 게임은 무승부를 만들었다. 그 다음 게임도 무승부. 마지막엔 기어코 이겼다. 아이들은 처음으로 승리를 경험했다. 이제는 샘물반에서 피구를 잘하는 아이가 윤호 만이 아니었다. 한수도 민이도 영훈이도 게임의 흐름을 파악하고 공을 어디에 어떻게 던져야 할지 알고 적절히 패스를 했다. 울기만 했던 유하도 연이도 열심히 뛰었고 공을 잡아 자기 팀에게 패스할 줄도 알았다.

물론 의도와 상관없이 공이 다른 데로 가기도 하지만 비난하거나 싸우지 않았다. 지인이도 부지런히 공을 피하고 공을 주워 자기 팀에게 주었다. 자기에게 공이 오지 않으면 떼쓰는 대신에 공을 잡은 자기 팀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응원까지 했다. 아이들은 첫 승리의 기쁨과 함께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고 협동하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한다는 게 뭔지를 몇 주 동안 배워갔다.

그리고 자신들이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아는 것 같았다. 게임이 끝나자 이긴 것에 대한 이야기보다 누가 어떻게 했고 서로 얼마나 멋졌는지를 정신없이 얘기하고 있었다. 스스로 대견했나보다. 오개월 남짓 시간 동안 아이들은 계속 자신을 조금씩 키워나갔었나 보다. 샘물도 그런 아이들을 쳐다보며 내내 감동했다. 아이들의 성장은 이렇게 찾아온다. 의도하지 않은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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