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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조명되는 독립운동가 홍진

인천시립박물관의 작은 전시 - ‘만오 홍진, 100년의 꿈을 쓰다’ 뜨거운 관심

19-08-08 10:52ㅣ 김영빈 기자 (jalb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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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홍진(1877~1946)의 모습 <출처='의회정치의 기틀을 마련한 홍진'>


일본의 경제침략에 맞서 인천시민을 비롯한 수많은 국민들이 제2의 의병활동을 표방하며 일본 불매운동에 나선 가운데 인천시립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독립운동가 홍진을 소개하는 전시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인천시립박물관은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지난 4월 2일 시작한 작은 전시 ‘만오 홍진, 100년의 꿈을 쓰다’가 관람객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고 8일 밝혔다.

대한제국 법관양성소 출신의 변호사였던 독립운동가 홍진(1877~1946년)은 3.1운동 직후인 1919년 4월 2일 인천 만국(자유)공원에서 13도 대표자대회를 열고 한성정부 조직을 결의하는데 산파 역할을 했다.

한성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모체로 민주제, 대의제, 공화정 등 오늘날의 헌법적 가치를 고스란히 담은 약법을 제정하고 이승만을 집정관총재로 추대했으며 4월 23일 서울 종로에서 ‘국민대회 취지서’와 ‘국민대회 선포문’을 배포해 한성정부 출범을 알렸다.


한정정부 국민대회 취지서 <자료제공=독립기념관>


3.1운동을 계기로 한 임시정부는 국내에서 결성된 ‘한성정부’ 뿐 아니라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대한국민회의’ 등이 생겨났고 그 해 9월 세 임시정부가 통합함으로써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탄생했다.

홍진은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현재의 국회의장 격인 임시의정원 의장과 정부 수반인 국무령을 맡아 민주공화정과 의회정치의 기틀을 다졌다.

특히 그는 임시정부 내에서 독립운동의 방법 등을 둘러싸고 의견이 나뉘어 갈등이 벌어질 때마다 희생과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 어려운 시기를 헤쳐 나갔다.

광복 이후에는 비상국민회의 의장으로 통일정부 수립에 애썼지만 결실을 보지 못한 채 1946년 9월 9일 만 70세로 세상을 떠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 독립운동가 홍진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서울 출신인 홍진 선생은 선영이 있는 문학산 자락에 잠들었는데 만국공원에서 한성정부 수립을 결의한지 27년 만에 인천으로 돌아온 셈이다.


'만오 홍진, 100년의 꿈을 쓰다'에 전시된 선생의 묘비 <사진제공=인천시립박물관>


10월 27일까지 계속되는 작은 전시 ‘만오 홍진, 100년의 꿈을 쓰다’에서는 선생의 장례 당시 비상국민회의가 세웠던 묘비, 한성정부 국민대회 취지서 및 선포문, 사진과 유묵 등을 만나볼 수 있다.

38년간 선생의 묘소를 지켰던 묘비는 1984년 묘를 서울국립묘지로 이장할 때 인천시립박물관으로 옮겨졌고 옥외전시 후 수장고에 보관됐다가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15년 만에 일반에 공개된 것이다.

시립박물관 관계자는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임시정부로부터 비롯됐고 그 모체는 한성정부에서 찾아볼 수 있다”며 “이번 전시가 홍진 선생이 추구했던 ‘자유롭고 평등한 통일 민주공화국’이라는 꿈을 함께 꾸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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