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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들에게 배운다 “내가 언제 그랬냐!”

(15) 장봉 삶의 장수 비결

19-09-18 08:30ㅣ 문미정 송석영 (mun177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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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나고 자란 젊은 부부가 인천 앞바다 장봉도로 이사하여 두 아이를 키웁니다. 이들 가족이 작은 섬에서 만나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인천in]에 솔직하게 풀어 놓습니다. 섬마을 이야기와 섬에서 일어나는 아이들의 일상을 이야기로 만들어 갑니다. 아내 문미정은 장봉도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며 가끔 글을 쓰고, 남편 송석영은 사진을 찍습니다.





오늘은 우리 집 닭들 이야기를 하고 싶다.
우리 집에 3마리의 닭이 있다. 올 봄부터 키우기 시작했는데 그 때엔 다들 어렸는데 이제는 장성하여 알도 낳아준다. 세 마리가 각각 크기도 약간씩 다르지만 성격도 식성도 다르다.

제일 큰 닭은 하얗고 겁이 많고 사료를 좋아한다. 겁이 많아 웬만하면 만지기가 쉽지 않다. 데려온 초반에는 알을 잘 낳더니 더워지기 시작하면서 알을 낳지 않는다. 성격이 못됐다. 동생들 사료 먹는 꼴을 못 본다.
 
두 번째로 큰 닭은 검은 청계이다. 제일 크고 예쁘다. 사료도 잘 먹지만 곤충을 좋아한다. 색연필만한 지네도 한입에 꿀꺽 삼킬 정도로 지네를 좋아한다. 그래서 그런지 알을 잘 낳는다. 태풍이 몰아칠 때도 매일 하나씩 나았다. 이 녀석은 진짜로 겁이 없어서 걸핏하면 사람들 어깨위로 머리위로 팔위로 올라탄다. 하지만 손에 잡히지는 않는다. 고양이도 막 쫒아 다닐 정도로 외모도 성격도 용감하다.
 
막내 닭은 털도 얼룩덜룩하고 크기도 작아서 제일 못생겨 보이지만 성격은 제일 온순하고 사람을 잘 따른다. 거의 매일 집안에 들어와 말썽을 부리는 녀석도 이 녀석이다. 품에 안고 가만히 있기도 하는 신통한 녀석이다. 막내 닭은 형님들에게 치여서 사료를 잘 못 먹는 편이다. 그래서 더 작은지도 모른다. 막내도 지네를 좋아한다. 그런데 막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은 과일이다. 화단에 심은 블루베리며 왕오디, 왕까마중은 막내 닭이 다 먹었다. 채식 위주로 먹어서 그런지 성격이 온순하여 내가 제일 예뻐한다.

그런데 이 셋은 매일 싸운다. 나름 서열이 있는데 막내는 털이 뽑힐 정도로 수난을 겪을 때가 많다. 내가 보호를 해주기는 하지만 집에 없을 때가 많으니 그저 매일 치고 박고 싸운다고 생각하는 게 맞다.
 
지난번 태풍이 왔을 때 이렇게 예쁜 닭들을 섬에 남겨두고 우리 가족은 섬을 탈출했다.
태풍이 지나가자마자 나는 아이들과 함께 섬으로 먼저 들어왔다.
집도 집이지만 닭들만 두고 온 것이 영 마음에 걸렸고 모두가 무사한지 궁금했다.
지인이 지유도 학교가 걱정이라며 학교가 무사한지 보고 오자고 성화다. 결국, 본의 아니게 섬을 한 바퀴 돌아보았는데…….



 

섬은 완전 초토화 그대로였다. 여기 저기 나무는 뽑히고 쓰러져 있었고 해변의 모래는 도로까지 날라들어 모래로 된 도로를 운전하며 다녀야 했다.
한들해변으로 가는 고개 마루에 놓여 있던 정자는 온데간데 없이 바스라 졌고, 원목으로 만들어져 시골스럽게 꽂혀 있던 이정표들은 대부분 쓰러졌다.
 
아기염소 깜지의 친정집인 염소 농장도 피해가 컸다. 염소 우리로 사용하고 있는 비닐하우스 비닐도 벗겨지고, 염소 구유 틀과 집이 따로 있었는데 완전히 폭삭 무너져서 염소들은 식당을 잃어야 했다.
가장 아쉬운 것은 우리 집 바로 위 옹암교회의 종탑 십자가가 똑 떨어져 버린 것…….

 



그렇게 태풍이 몰아치고 반짝 반짝 햇살이 고개를 내밀었다. 모두가 그 햇살이 얼마나 반갑고 고마웠는지...
 
비바람이 그치자 우리 집 닭들이 나란히 앉아 깃털을 말린다.
매일 싸우고 쫒아 다니던 닭들이 그렇게 다정한 모습을 보인 건 처음이었다.



 

태풍이 지난 가을 하늘도 매일 싸우던 우리 집 닭들도 모두가
“내가 언제 그랬냐?” 하는 것만 같다.
 
장봉에서의 삶은 그리 녹녹치 않다. 늘 바쁘고 체력은 고갈되어 간다고 느낄 때가 자주 온다. 자연을 누리기도 하지만 자연과 싸우기도 해야 한다. 가장 큰 스트레스는 늘 같은 얼굴을 보는 것…….
가족도, 직장도, 이웃도 매일 매일이 똑같다. 그러다 보니 우리 집 닭들처럼 자주 다투고 섭섭하고 흉보고 힘겨워한다.
하지만 그래서 더 닭들의 정신이 필요하다.
“내가 언제 그랬냐!”
 
닭들을 보며 나는 오늘도 배웠다.
오래 살고 잘 살려면 때로는 뻔뻔함이 필요할 때도 있다는 것을…….
“흥! 내가 언제 그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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