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의 기착지 화동습지, 먹황새를 다시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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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의 기착지 화동습지, 먹황새를 다시 품다
  • 박정운
  • 승인 2024.04.30 16: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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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 물범지킴이의 생태일기]
(22) 화동습지의 새들
화동습지
백령도 화동습지

 

먹황새를 다시 본 건 지난 4월 7일이었다. 4년여 만에 두 번째로 먹황새를 본 것이다. 이곳 백령도에서. 처음 먹황새를 본 것은 2020년 10월 7일 오후 2시 45분이었다. 하늬바닷가에서 점박이물범을 모니터링하고 있었는데 북쪽 방향에서 커다란 새 한 마리가 백령도 방향으로 날아왔다. 종종 하늬바다를 건너 남북방향을 오가는 새들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검은목두루미나 왜가리 인가 보다 했다. 그러다가 백령도 내륙으로 날아가고 있는 그 새를 다시 한번 쳐다본 순간 뭔가 달랐다. 낯설었다. 뭐지? 이미 멀어져간 그 새를 카메라로 촬영하여 확대해 보니 먹황새였다. 먹황새와의 첫 만남은 본 듯 못본 듯 희미하게 멀어져갔다.

그런데 먹황새와의 두 번째 만남은 달랐다. 4월 7일 오후 3시 11분, 저어새를 관찰하러 화동습지에 막 도착하던 중이었다. 공중에 하얀색, 회색, 검은색의 커다란 새가 각각 한 마리씩 싸울 듯 날개짓을 하고 있었다. 흰빛의 중대백로와 회색빛의 왜가리가 검은빛의 새를 공격하는 모양새였다. 직감했다. 검은빛의 새는 먹황새였다. 검은 눈동자를 에워싼 붉은 눈테와 붉은 부리, 청녹색의 목덜미마저 보이는, 화동습지에 막 도착한 먹황새가 눈 앞에 있었다. 1960년대 말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번식을 했던 먹황새, 이제는 많이 줄어들어 멸종위기종이고, 세계적인 희귀종 먹황새를 가까이서 만나 얼마나 떨렸던지.

 

먹황새
먹황새
먹황새
먹황새

 

이런 필자의 생각과는 달리 이미 화동습지에 터를 잡고 있었던 여러 새들에게는 새로운 침입자 였던 모양이다. 중대백로와 왜가리가 나서서 낯선 먹황새를 밀어내려 몇 차례 시도를 했지만 실패했다. 그렇게해서 먹황새는 화동습지에서 흰뺨검둥오리, 중대백로, 왜가리, 저어새, 민물가마우지, 괭이갈매기, 장다리물떼새, 물닭, 논병아리 등과 이틀을 함께 지내고 떠났다.

월동지와 번식지를 오고 가던 먹황새에게 백령도의 화동습지는 먹고 재충전 할 수 있는 휴게소였고, 잠깐 머물며 쉴 수 있는 쉼터였다. 필자가 백령도에 머물기 시작한 2019년부터 비정기적으로 관찰을 해보니 이렇게 백령도의 화동습지를 중간기착지로 이용하는 새는 먹황새뿐만 아니었다.

흑두루미, 황새, 뒷부리장다리물떼새, 고니, 큰고니, 혹고니 등등 더 다양한 새들이 백령도의 화동습지 일대를 중간기착지로 이용하고 있다.

 

흑두루미
흑두루미
흑두루미
흑두루미

 

흑두루미의 경우, 어린 개체를 동반한 가족 무리를 비롯하여 소수 개체가 이동 중에 논경지에 내려앉아 먹이를 먹고 떠났다. 2021년 3월 1일 흑두루미 7마리, 2021년 11월 9일 흑두루미 2마리, 2022년 11월 1일 흑두루미 2마리, 2024년 2월 29일 흑두루미 3마리 등을 관찰했다.

뒷부리장다리물떼새 1개체도 백령도에 잠깐 들렀다 갔다.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에서 번식하는, 우리나라에서는 극히 드문 겨울철새로 알려진 뒷부리장다리물떼새는 2022년 4월 27일, 2024년 3월 24일에 화동습지에서 관찰하였다.

고니류는 우리나라에서 관찰되는 3종 모두 백령도에 들렀다. 2019년 11월 11일 큰고니 3마리, 2020년 10월 29일 큰고니 1마리, 11월 4일 큰고니 11마리, 12월 23일 혹고니 1마리, 2022년 4월 30일 고니 1마리, 10월 20일 큰고니 7마리, 11월 6일 고니 1마리, 2023년 11월 3일 큰고니 1마리 등이 백령담수호와 화동습지 일대에서 관찰되었다.

 

큰고니
고니
고니

 

2022년 4월 30일에 관찰한 고니는 화동습지 인근의 논두렁에 풀을 뜯고 있었다. 호수에 떠 있는 우아한 백조의 이미지는 어디 가고 부리에 논흙을 뭍혀가며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은 웃기기도 했고, 안쓰럽기도 했다. 언젠가는 백령담수호에 방금 도착한 큰고니를 본 적 있는데, 몹시 피곤했는지 경계를 살피더니 길다란 목을 날개에 파뭍고 뜬눈으로 잠을 잤다. 이동 중에 무리에서 홀로 떨어졌거나, 체력 등의 이유로 출발이 늦어진 경우일 것이다.

이렇게 찾아 온 새들은 짧게는 몇시간에서 열흘정도까지 머물면서 기력을 회복하여 번식지로 또는 월동지를 찾아 떠났다. 먼 곳에서부터 바다를 건너오느라 지친 새들에게는 백령도의 화동습지와 같은 중간기착지는 다시 힘을 얻어 생을 이어가고 자연의 역사가 계속될 수 있도록 지탱해 준 고마운 곳이 아닐 수 없다.

 

뒷부리장다리물떼새
뒷부리장다리물떼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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